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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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달리라        아가 8:8-14

오늘로서 솔로몬의 사랑 노래를 마치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이 설교를 들으시면서 궁금하게 여기시리라고 생각되는 몇 가지를 먼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번째로 술람미 여인은 과연 누구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솔로몬 왕은 우리가 아는 대로 많은 여성들을 사랑하였는데, 그 중에 그가 가장 사랑한 술람미 여인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정설은 아니지만 가장 유력한 주장은 술람미 여인은 수넴 여인 아비삭이라고 합니다. 다윗 왕이 나이 늙어 이불을 덮어도 몸이 녹지 않을 정도가 되었을 때,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구해 그를 봉양토록 합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와 어떤 관계도 가지지 않았는데, 다윗 왕이 죽자 이 여인을 아도니아라는 왕자가 탐을 냅니다. 그래서 솔로몬 왕에게 그를 자기의 아내로 삼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는데, 솔로몬은 아도니아를 처형되고 말았습니다(왕상 2:21-25).

그러면 이 여인을 아내로 취할 사람은 솔로몬 왕 외에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수넴이란 지명을 옛 번역에는 술람미라고 번역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술람미 여인은 당시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수넴 여인 아비삭이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술람미 여인은 첫 사랑을 가졌고, 처음 결혼한 왕후라고 합니다.

두 번째로 솔로몬은 이 글을 언제 썼느냐는 것입니다. 그는 많은 이방 여인들을 사랑하면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마저 버렸는데, 언제 이런 글을 썼느냐하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그가 말년에 진정으로 회개하고 본래의 신앙으로 돌아와 한적한 레바논의 별장에서 수넴 여인 아비삭과 첫 사랑을 나누던 일을 회상하게 되었고, 이것은 앞으로 오실 메시아와 그의 택함을 입은 성도와의 사랑이 이와 같을 것을 예상하면서 기록하였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이것은 솔로몬 왕의 개인의 사랑 노래가 어찌 성경에 포함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버드 대학의 파이파(R. H. Pfeiffer)교수는 이 글을 쓴 솔로몬 왕은 연애 광이라고 혹평하면서 정경적 가치가 없다고 하였는데, 어찌 정경에 포함되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자유주의 신신학자들이 하는 말이고 아가서를 속된 연애시로 보는 저속한 인간의 속성의 결과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성도의 신랑으로, 성도들은 그의 신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불신자들에게 전도를 하면서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고후 11:2)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아가서는 앞으로 오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시로 인식하고 읽고 묵상하여야지 인간적 사랑의 이야기로 읽으면 말씀의 권위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오늘까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전하면서 참고한 문헌은 대한 예수교 장로교 총회에서 출판한 표준 성경주석이라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이것을 밝히는 것은 우리 장로교의 입장이 그러하다는 것을 명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제 본문으로 돌아가겠습니다. 오늘 마지막 시간에 우리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을 통하여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우와 의무

"우리에게 있는 작은누이는 아직도 유방이 없구나 그가 청혼함을 받는 날에는 우리가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할꼬"(아 8:8).

이 말씀은 술람미 여인의 오라비들의 고민입니다. 즉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의 총애를 받는 것은 좋으나 오라비들의 눈으로 볼 때, 아직 미성숙한 어린아이에 불과한데 일국의 왕비가 될 수 있을까? 솔로몬의 사랑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기우의 고백입니다. 그러면서 저들은 가장 큰 관심거리는 술람미 여인이 여자로서의 정조를 잘 지켰는가하는 점입니다.

"그가 성벽일진대 우리는 은 망대를 그 위에 세울 것이요 그가 문일진대 우리는 백향목 판자로 두르리라"(아 8:9).

그가 "성벽일진대"라고 한 것은 술람미 여인이 여자로서 정조와 지조를 지켰다는 말입니다. 그랬으면 은망대를 세워 더 잘 지키도록 할 것이라고 합니다. 만일 "문일진대"라는 말은 정조를 지키지 못하였으면 이제라도 백향목 판자를 둘러 잘 지키도록 가르쳐야 하겠다는 각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통하여 주님이 원하시는 것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 성도들이 신앙의 지조를 지키기를 바라십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지조를 지키고 의리를 지켜야 하는 것처럼 성도들은 신앙의 지조를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성도들을 미혹하는 세력들이 너무 많습니다. 이단과 사설이 우리를 미혹하는 것은 이미 오래 되었고, 물질적으로 풍요로워 지니 세속의 즐거움과 육신의 평안을 추구하는 세속주의가 교회 안으로 쏟아져 들어와 성도들의 신앙을 잠재워 왔습니다. 요즘은 IMF로 인하여 생활의 불안을 느끼면서 주일도, 예배도, 기도도 내 동댕이치고 세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닌가? 그 동안에도 돈 때문에 신앙을 팔아먹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되는 것이 아닌가 심히 염려되고 두려움 마저 가지게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성도들이 돈을 따라가고, 자기 지식과 인본주의적으로 살고,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보다 더 중하게 여기면서 신앙의 지조를 지키지 못하는 것을 영적 간음이라고 하였고, 이것을 가장 싫어하실 뿐 아니라 중벌을 고사하고 내리십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선지자였던 호세아는 고멜이라는 여인을 아내로 맞아 3남매를 낳았지만 고멜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의 품에 안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에게 고멜의 정부에게 돈을 지불하고 아내를 다시 데려오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을 섬기는 것은 남편을 버리고 간음하는 것과 같다고 책망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저들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 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남 왕국 유다는 바벨론에게 망하고 말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신앙의 지조를 지키셨습니까?. 하나님께 나오는 시간은 지키셨습니까? 주일에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빠짐없이 참석하였습니까? 성경을 읽고 있습니까? 이단과 잘못된 신앙에 한눈을 판 일은 없으십니까? 매사에 하나님을 신실하게 의지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인간적인 방법과 지식에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지금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신앙의 지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사회가 악하여지고 긴박할지라도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면서 지조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신앙에서 한눈을 팔지 마십시다.

술람미 여인의 오라비들이 동생의 지조에 대하여 염려하고 있을 때, 그는 고백하기를 "나는 성벽이요 나의 유방은 망대 같으니 그러므로 나는 그의 보기에 화평을 얻은자 같구나"(아 8:10)라고 말입니다.

술람미 여인은 오라비들의 고민과 기우를 들으면서 소리 높여 외친 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외침이 있기를 바랍니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

"솔로몬이 바알하몬에 포도원이 있어 지키는 자들에게 맡겨두고 그들로 각기 그 실과를 인하여서 은 일천을 바치게 하였구나 솔로몬 너는 일천을 얻겠고 실과 지키는 자도 이백을 얻으려니와 내게 속한 내 포도원은 내 앞에 있구나"(아 8:11)

이 말은 술람미 여인이 자기 오라비들을 솔로몬의 포도원을 지키는 자로 선정해 주면 솔로몬도 좋고, 친정도 좋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일종의 취직 청탁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영적 의미는 포도원은 교회를 상징하고, 포도원을 지키는 자는 교회의 목사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목사는 마지막 날 주님 앞에서 교회를 세우고 관리한 책임을 지고 은 일천개를 바치는 것과 같은 계산을 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고, 그 수고한 품삯으로 이백을 얻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그의 포도원을 포도원 지키는 자에게 마꼈습니다. 그리고 충성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충성된 종에게 마지막 날 품삯으로 상급을 주실 것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마 10:42).

그러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목사만 포도원에서 일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부교역자들도, 장로들도, 성가대원들도, 주일학교 교사들도, 나이 많은 권사님들도, 모두 함께 수고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지막날 주님께 드려야 할 것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는 수고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 위에 군림하는 것도 아닙니다. 성도는 많은 일을 하면 할수록 더욱 머리를 숙이고 겸손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목이 집중되면 될수록 더욱 다른 사람을 존경하여야 합니다. 주님은 이런 성도들을 더욱 귀하게 여기시고 더 크게 쓰십니다.

그러니 주님에게 합당한 성도가 되십시오. 사람에게 자랑거리가 되지 말고, 교만을 떨지 말고, 주님을 높이고 나는 죽어지도록 하십시오. 주님이 원하는 일군은 이런 분들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쓰임이 되시고 주님께 이를 남겨 드리는 성도가 되십시오.

재림을 기다리는 믿음

이제 솔로몬 아가의 대단원을 내릴 차례가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무엇으로 결론을 내리며 노래 중 노래인 아가의 대비를 장식합니까?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빨리 달리라 향기로운 산들에서 노루와도 같고 어린 사슴과도 같아여라"(아 8:14).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에게 빨라 달려오라고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은 우리가 주님에게 부탁하는 마지막 간구이며 성도의 마지막 소망입니다. 그것은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의 소리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천지창조에서 시작하여 예수님의 재림으로 대미를 장식합니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계 22: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은 불원하여 오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그를 기다려야 하며, 맞을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 맞을 준비가 된 성도만이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고 하시는 주님을 향하여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라고 팔을 벌릴 수 있습니다. 이런 마라나타의 신앙을 가지는 여러분이 되어 주님의 날에 영광스럽게 들림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