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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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아 8:6-7
 

오늘은 다시 솔로몬과 술람미 여인의 사랑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 오늘 봉독한 말씀은 아가서의 총 결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 말씀은 술람미 여인이 솔로몬에게 "나를 잊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부탁으로 시작하여 솔로몬의 열렬한 사랑에 대하여 진술하는데, 그 사랑의 고백을 통하여 우리에게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우선 사랑에 대한 말씀에서 시작하겠습니다.

사랑의 본질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아 8:6).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우선 이 말씀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사랑이란 아름답고 고상한 개념인데, 술람미 여인은 이 고상한 사랑을 죽음에 비유하고, 음부에 비유하고, 불에 비유함으로써 약간 음산한 기분이 들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표현은 음산하지만 그 속에도 오묘한 뜻이 내포되면서 하나님의 사랑의 위대함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다"고 하였습니다.

첫째, 사랑과 투기는 동일선상의 개념입니다. 왜냐하면 투기와 질투는 자기 사랑의 대상을 다른 사람이 침범했을 때 일어나는 것으로써 자기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좋은 의미의 투기는 진정한 사랑에서 출발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시기와 질투는 사랑의 별명인데, 부부지간에만 쓰이는 말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투기라는 말을 자신에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십계명에서 하나님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출 20:3)고 하시면서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겠다"(출 20:5)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우리가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을 시기하고 질투하시기까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즉 그의 택한 백성들을 다른 신에게 뺐기는 것을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믿으십니까?

둘째,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다"에서 죽음과 음부도 동일선상의 말씀입니다. 사랑을 왜 죽음과 음부에 비유하였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선 죽음 앞에 복종치 않는 존재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죽음의 세력은 항우 장사도 굴복시켰고, 969세를 살았던 므두셀라도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막강한 권세를 가지고 있는 죽음보다도 사랑은 한 차원 더 강하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음부같이 잔혹하다"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음부란 히브리어 단어 "솨알"은 청구한다는 뜻이고, 잔혹하다는 히브리 단어 "카솨"는 제압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죽음과 음부와 같이 강하여 아담 이후 지금까지의 모든 사람들을 다 집어삼키고도 만족을 모르고 아직도 입을 벌리고 있는데 그것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일차적인 결론을 얻도록 하겠습니다.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의 사랑을 "죽음 같이 강하고 음부같이 잔혹하며 여호와의 불과 같다"고 고백하였는데, 사실 이런 사랑은 인간에게서는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술람미 여인의 입을 통하여 우리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모든 죄인을 품에 안고도 남는 가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사랑의 불은 우리의 모든 죄를 태우고도 남습니다. 그리고 그의 사랑은 질투하리만큼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그의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하였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시어 십자가를 지실만큼 강한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랑을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에게 베풀어주셨고, 지금 우리는 받고 있습니다. 믿으십니까? 아멘.

사랑의 위대함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하지 못하나니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 8:7).

"이 사랑은 많은 물이 꺼치지 못하겠고 홍수라도 엄몰치 못한다"는 말씀은 지금까지 말씀드린 것으로 짐작하실 것입니다. 많은 물은 바다의 물을 가리키는 말씀인데, 사랑의 불길은 바다의 물을 다 동원하여도 끌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홍수는 하천의 물을 가리키는 것이며 "엄몰"한다는 것은 쓰러버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랑은 "홍수도 엄몰하지 못한다"는 것은 사랑의 힘은 어떤 세력으로도 막을 수 없고 단절시킬 수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 8:38-39).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롬 8:3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나 그 사랑을 받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고 극복할 수 있습니다.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롬 8:35, 37).

믿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두려움을 모릅니다. 불안이 없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낙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엡 3:19) 무한하고 영원한 사랑을 가지신 주님의 품에 안겨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사랑을 확신하면서 담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머리를 들고 주님을 바라보면서 역경에서도 소망을 잃지 마시기 바랍니다. IMF의 풍란이 일고, 경제의 압박이 와도 최후의 승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품에 있는 우리의 것입니다.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사랑의 가치

"사람이 그 온 가산을 다 주고 사랑과 바꾸려 할지라도 오히려 멸시를 받으리라"(아 8:7).

사랑의 가치는 전 세계의 부귀와 영화, 명예와 재산으로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함이 있는 것을 가르칩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몇 가지를 다짐해야 합니다. 첫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그가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 명예와 재산으로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믿고 있습니까? 그가 虛己成人하시고 受難之死하신 사랑을 인생 최고의 사랑으로 받고 만족하십니까? 그런 분들만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그런 주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니 우리도 그를 사랑하되 세상의 가장 귀한 것보다 그를 더 귀하게 여기며 사랑해야 합니다.

찬송가 102장 1절

"주 예수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 이 세상 부귀와 바꿀 수 없네, 영 죽을 내 대신 돌아가신, 그 놀라운 사랑 잊지 못해,

<후렴>
세상 즐거움 다 버리고, 세상 자랑 다 버렸네, 주 예수보다도 귀한 것은 없네, 예수밖에는 없네"

이런 사랑이 있는 한 우리는 그와 함께 굳게 설 수 있습니다. 믿으십시오.

셋째. 이것은 더 귀한 고백인데 오늘 부부가 함께 교회에 출석하신 성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들은 상호간에 사랑하고 믿고 신뢰하십니까? 그리고 그 사랑이 전 세계의 부귀와 영화, 명예와 재산을 다 주고도 바꿀 수 없는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까?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보! 나는 당신이 돈이 없고, 권력도 없고, 아무 것도 없어도 당신의 진정한 사랑으로 만족하오"라고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시 한번 인식하시고, 여러분의 삶에 변화가 있기를 바랍니다. 돈 때문에 웃고, 우는 천박한 사랑이 아니라 영원히 변함이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충만되어, 육신적으로 고난이 닥쳐오고, 가난이 닥쳐오고, 질병이 닥쳐오고, 마음에 고통스러움과 걱정거리가 닥쳐올지라도 나에게는 이 세상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기에 모든 고통과 어려움, 시련과 환난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인 같이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 사랑은 죽음 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불같이 일어나니 그 기세가 여호와의 불과 같으니라"(아 8:6).

말씀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습니다. "너는 나를 인 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는 말씀은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 달라"는 간곡한 요청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풍습을 이해하여야 알 수 있는 말입니다. 저들은 도장을 호주머니에 넣고 다닌 것이 아니고, 노끈에 매어 목에 걸든지 아니면 가슴에 품고 다녔습니다. 바벨론 사람들은 도장을 반지에 새겨 늘 손가락에 끼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도장의 주인과 도장과는 죽음 외에는 끊을 수 없도록 했습니다.

이런 풍습을 근거로 "너는 나를 인같이 마음에 품고 도장 같이 팔에 두라"는 말은 나, 술람미 여인은 가난한 농촌 출신이며 미천한 신분의 여자에 불과하지만 영원히 나를 잊지 말고 오늘의 사랑에 변함이 없도록 해 달라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가지를 해야 합니다. 첫째는 주님께 불변의 사랑을 청구해야 합니다. 우리도 술람미 여인처럼 미천한 죄인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변함이 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인간의 사랑은 속절없이 변할지라도 주님의 사랑만은 변함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랑만 있으면 어떤 어려운 시련이 있어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인간의 염려를 미리 아시고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사 49:16)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못 자국이 주님의 손바닥에 있는 것은 우리를 위한 사랑의 표시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못자국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우리를 향하신 사랑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믿습니까?

이런 사랑이 우리에게 있는데도 우리 중에는 불안하고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부모의 품에 안겨 있으면서도 불행을 느끼는 아이와 같은 경우입니다. 이것이 모순입니다. IMF, 질병, 재산의 손실, 직장 문제 등으로 어려움과 불안이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길 수 있고 또 소망이 넘치는 것을 확신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사랑으로 승리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